2022.06.27 현대 모터스포츠팀

[2022 WRC 6R] 현대 월드랠리팀 누빌, 극악의 난이도 사파리 랠리를 5위로 마무리하다

현대 모터스포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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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사파리 랠리 케냐에선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이어졌다. 현대 월드랠리팀의 티에리 누빌 역시 여러 트러블을 겪었지만 파워 스테이지 추가점까지 챙기며 5위로 경주를 끝마쳤다.

지난 6월 22일 수요일, 2022 WRC 제6전 사파리 랠리 케냐(Safari Rally Kenya)의 테스트 세션이 시작되었다. 무려 19년 만에 다시 정식으로 개최된 사파리 랠리는 오랜 역사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이벤트다. 지난해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부활해 올해 다시 캘린더에 이름을 올렸다. 1953년 사파리 랠리가 시작할 당시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이벤트 성격이었다. 1960년에는 동아프리카 사파리 랠리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4년부터는 지금과 같이 사파리 랠리 케냐로 불리게 되었다. WRC 캘린더에 포함된 것은 1973년이며, 이후 2002년까지 계속되었다. 즉, 2021년 WRC 개최 30회를 맞은 유서 깊은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사파리 랠리는 아프리카의 때 묻지 않은 야생 속에서 펼쳐진다

사파리 랠리는 한마디로 야생 그 자체다. 아프리카 대륙의 거친 노면과 높은 기온, 게다가 급변하는 기상 상황까지 난관이 가득하다. 예전에는 경기 구간만 1,000km가 넘어 랠리레이드(Rally raid, 장거리 오프로드 레이스)의 성격이 강했지만, 지난해 부활하면서 320.19km로 대폭 짧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RC 최악의 난이도라는 평가는 여전하다.

사파리 랠리의 노면은 고운 모래, 그 안에 숨은 돌, 진흙탕 등 다양하게 이뤄진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정비되지 않은 도로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시시각각 참가자들을 노린다. 이런 길을 일반적인 그레이블 랠리처럼 질주했다가는 어떤 차라도 살아남기 힘들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흔적이 희미한 길을 따라 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 페시페시(fesh-fesh)라 불리는 고운 토질도 복병이다. 지난해 도요타 팀의 칼리 로반페라(Kalle Rovanperä)가 흙구덩이에 빠져 경기를 포기한 것도 고운 토질 때문이다. 반면 비가 내리면 진흙탕으로 바뀌면서 마치 얼음 위를 달리는 것처럼 돌변한다.


한여름 아프리카의 불볕더위는 참가자의 체력과 집중력, 신형 랠리카의 내구성을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갑작스런 폭우도 절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지난해 현대 월드랠리팀의 오트 타낙(Ott Tänak)은 폭우 속에서 성에를 해결하지 못해 한동안 차를 멈추어야 했다. 간혹 야생동물들이 길을 가로막기도 한다. 이처럼 참가자들은 예측 불가의 야생에 적응해 살아남아야만 한다.

현대 월드랠리팀은 티에리 누빌, 올리버 솔베르그, 오트 타낙의 3인조를 엔트리했다

제5전 이탈리아에서 승리하며 한숨 돌린 현대 월드랠리팀은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과 오트 타낙, 신예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로 드라이버진을 꾸렸다. 지난해와 같은 구성. 누빌은 지난해 사파리 랠리에서 가장 많은 스테이지 톱타임을 기록하고도 마지막 날 서스펜션 파손으로 주저앉아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챔피언십 2위로 로반페라와의 점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파리 우승이 반드시 필요하다. 타낙 역시 타이틀 쟁탈전 복귀가 걸린 중요한 일전. 지난해 일찍 리타이어했던 솔베르그는 완주가 우선이다.

도요타 팀은 칼리 로반페라와 엘핀 에반스(Elfyn Evans),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 외에 세바스티앙 오지에(Sébastien Ogier)를 다시 기용했다. 로반페라는 올 시즌 3승으로 독주하며 챔피언십을 여유롭게 리드하고 있다. 반면 에반스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팀 내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M-스포트 포드에서는 세바스티앙 로브(Sébastien Loeb)를 엔트리해 개막전 이래 두 거장(로브, 오지에)의 대결이 다시 한번 성사됐다. 로브는 랠리1 드라이버 가운데 예전 사파리 랠리를 경험한 유일한 선수다. 이밖에 크레이그 브린(Craig Breen)과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 거스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 등 M-스포트 포드는 무려 5대의 푸마 랠리1 경주차를 케냐에 끌고 왔다. 마지막 1대는 벨기에계 그리스 드라이버 조단 사르데리디스(Jourdan Serderidis)가 몰았다. 참고로 M-스포트는 프라이빗 팀에 랠리1 차를 판매하고 있다.

2002년 이후 19년 만인 지난해부터 다시 정식으로 개최된 사파리 랠리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서비스 파크는 올해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의 북서쪽 100km에 위치한 나이바샤 호수(Lake Naivasha) 인근에 마련되었다. 야생동물 훈련기관에 인접한 곳이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스테이지가 하나 늘고 1/3가량의 코스가 새로 구성됐다. 경기 구간도 363.44km로 40km 이상 늘었는데, 정찰 주행을 마친 참가자들은 지난해보다 더 힘들고 거친 레이스가 될 것이라 평가했다.


목요일 나이로비 시내에서 오프닝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 2시부터 도심 북동쪽에 마련된 카사라니(Kasarani) 슈퍼 스페셜 스테이지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2대씩 동시 출발 방식으로 치러진 SS1에서는 오지에가 가장 빨랐고, 누빌과 타낙이 그 뒤를 이었다.

가혹한 주행 상황 때문인지 랠리 시작부터 차를 수리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금요일은 나이바샤 호수 북쪽의 숲이 우거진 19.17km의 롤디아(Loldia)를 시작으로 3개 스테이지를 반복해 달리는 6개 SS의 124.2km 구성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설정된 SS3, SS6의 지오서멀(Geothermal)은 험준한 돌바닥을 헤치고 경사로를 오르내려야 한다. 31.25km의 SS4, SS7 구간인 케동(Kedong)은 사파리 랠리에서 가장 긴 스테이지이자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부드러운 흙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바위들이 호시탐탐 참가자들을 노렸다.


금요일 오프닝 스테이지를 잡은 것은 로브였다. 하지만 이어진 SS3에서 도요타 세력이 종합 순위 상위권을 독차지했다. 여기에는 현대팀과 M-스포트의 불운도 한몫 거들었다. 우선 타낙은 SS2에서 변속 레버가 부러져 레버의 뿌리 부분을 잡고 변속해야 했다. 누빌은 케동에서 엔진 출력이 떨어져 한때 종합 9위까지 밀렸다. 

참가 선수들 대부분이 사파리 랠리의 가혹한 주행 환경에 혀를 내둘렀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선두 출발의 노면 청소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SS3에서 가장 빨랐던 로반페라는 오지에가 타이어 교체로 2분가량 손해 보는 사이 종합 선두로 부상했다. 하지만 사파리 랠리의 악몽에 빠진 것은 오지에만이 아니었다. 로브는 케동 스테이지에서 엔진에 불이 나 리타이어했고, 포모의 랠리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속도를 잃었으며 브린은 스티어링 파손에 무릎을 꿇었다. 그린스미스 역시 오른쪽 뒷바퀴가 터져 M-스포트 세력은 선두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금요일을 마치는 시점에서의 선두는 로반페라였다. 가츠타와 에반스가 뒤를 이었고 현대팀 세력 중 타낙과 누빌이 4~5위로 그 뒤를 쫓았다. 타낙은 선두와 25.3초, 누빌은 57.5초 차이다. 가츠타는 원래 종합 4위였지만 고장 난 브린의 차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 인정되어 10초를 감면받았다.

많은 비가 내려 물웅덩이가 생긴 곳을 지날 때면 엔진에 물이 유입돼 낭패를 겪기도 한다

토요일은 조금 더 북쪽으로 이동해 엘멘테이타 호수(Lake Elmenteita) 인근에 마련된 3개 스테이지를 반복했다. SS8~SS13 합계 134.9km는 이번 경기 중 가장 긴 하루였다. 특히 오프닝 소이삼부(Soysambu)는 지난해 9km에서 30km에 육박하는 장거리 스테이지로 완전히 새로 구성됐다. 긴 직선, 고속 코너, 거친 암석, 오르막과 내리막은 물론 두 개의 물길을 건너야 하며, 진흙 노면 등등 케냐 랠리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엘멘테이타와 슬리핑 워리어(Sleeping Warrior) 스테이지는 지난해와 동일하다. 슬리핑 워리어는 언덕 지형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가 마사이(Masai) 전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오프닝 스테이지를 잡은 에반스는 팀 동료 가츠타를 제치고 종합 2위로 부상했다. 이어진 SS9에서는 누빌이 앞유리 파손에도 불구하고 가장 빨랐다. 타낙도 3위의 기록을 내며 선두권과의 시차를 좁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슬리핑 워리어 막판에 프로펠러 샤프트가 부서져 리타이어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SS9, SS10을 잡았던 누빌은 SS12에서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을 세우며 가츠타를 제치고 종합 3위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후 찾아온 불운에 발목을 잡혔다. 비가 내려 한층 미끄러웠던 이날의 최종 스테이지 슬리핑 워리어에서 물길을 건너다 엔진이 꺼졌고, 겨우 재출발에 성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와 충돌해 멈추어 섰다. 결국 로반페라가 종합 선두로 토요일을 마무리했고 에반스, 가츠타, 오지에가 그 뒤를 이었다. 누빌은 선두와 10분 차이로 5위, 솔베르그는 도로변에서 서스펜션을 수리하느라 1분 30초의 페널티를 받았음에도 금요일 차가 고장 났던 브린 덕분에 종합 6위였다.

티에리 누빌은 토요일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일요일은 나이바샤 호수로 돌아와 오세리안(Oserian), 나라샤(Narasha), 헬스 게이트(Hell’s Gate) 3개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6개 스테이지에서 최종 승자를 가렸다. SS14 오세리안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위치하며, 나라샤는 유서 깊은 마사이족의 영역을 가로질러 리프트 밸리(Rift Vally)의 건조한 노면을 달린다. 헬스 게이트 스테이지는 피셔즈 게이트(Fisher’s Gate) 인근에서 마감된다. 평지에 우뚝 솟아 있는 암벽인 피셔스 게이트는 나이로비에서 당일치기 여행객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 사파리 랠리를 마감하는 파워 스테이지가 바로 이곳에서 벌어진다.

사파리 랠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아프리카 대자연의 풍경. 사진 : WRC (https://www.wrc.com)
고운 모래(페시페시)가 쌓인 길을 지날 때는 흙먼지가 차의 흡기 계통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오프닝 스테이지에서는 솔베르그의 차가 대량의 흙먼지로 에어필터가 막히면서 좁은 길 중간에 멈춰 섰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참가자에게는 동일한 기록이 부여됐다. 이로 인해 누빌과 타낙은 사실상 포디엄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파워 스테이지 포인트로 눈을 돌렸다. 파워 스테이지의 리허설이라고 할 수 있는 SS16 헬스 게이트에서 타낙이 톱타임, 누빌이 6.3초 차이로 그 뒤를 이었다.


오프닝 오세리안을 다시 달리는 SS17에서는 SS14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한 것 때문에 17.52km 중 페시페시가 많은 앞부분을 잘라내어 14.42km로 단축했다. 선두권은 최소 30초 이상씩 벌어져 있어 무리한 주행보다는 완주에 주력했다. 최종 스테이지이자 파워 스테이지를 겸하는 SS19에서는 누빌이 로브를 0.8초 차이로 제치고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워 5점의 추가 점수를 챙겼다.

티에리 누빌은 파워 스테이지에서 톱타임을 기록해 귀중한 5점을 추가로 챙길 수 있었다

결국 올해 사파리 랠리 케냐에서는 로반페라가 여유롭게 선두를 질주하며 시즌 4번째 승리를 손에 넣었다. 그 뒤로 에반스, 가츠타가 포디엄을 채웠고, 오지에는 4위를 기록했다. 현대팀의 누빌은 5위로 경주를 마무리했으며, 타낙은 스티어링 계통 고장으로 안타깝게 리타이어했다. 대신 솔베르그가 득점권인 10위에 안착하며 귀중한 점수를 보탰다. 누빌 뒤로는 M-스포트 포드 세력의 브린, 세르데리디스, 로브가 자리했다.


챔피언십에서는 도요타의 로반페라가 145점으로 1위를 유지했다. 2위 역시 여전히 현대팀의 누빌로, 종합 5위에 파워 스테이지 추가 포인트 5점을 합쳐 80점이다. 도요타의 가츠타가 현대팀의 타낙과 동점인 62점이 되었지만, 1승이 있는 타낙이 3위를 고수했다. 유럽으로 돌아온 WRC는 시즌 반환점인 제7전을 준비한다. 다음 경주는 7월 14~17일, 에스토니아(Estonia) 제2의 도시 타르투(Tartu)에서 열린다.




글. 이수진(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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