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0 현대 모터스포츠팀

WRC만의 독특한 타이어 사용법

현대 모터스포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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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C로 대표되는 랠리에서의 타이어 전략은 서킷 경기와 사뭇 다르다. 터진 타이어를 끌고 달리기도 하고, 서로 다른 종류의 타이어를 조합하여 쓰기도 한다. 현대 월드랠리팀이 최근 이탈리아 랠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도 영리한 타이어 전략이 있다. 초창기 모터스포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WRC의 타이어 전략을 살펴봤다.

자동차의 가속과 감속, 그리고 코너링 스피드를 유지하는 것은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접지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상황에 맞는 적절한 타이어 선택은 모터스포츠에서 승리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F1처럼 여러 팀원이 한 번에 달라붙는 화려한 교체 쇼는 없지만, 랠리에도 그들만의 전략과 방식이 있다. 가령 경기 중 펑크가 난 타이어는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가 직접 교체해야 한다. 또한 다음 서비스 시간까지는 앞서 선택한 타이어를 그대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 준비에 철저해야만 한다. 경기 도중에 비가 예상되거나 코스 군데군데 얼음이 있다면 서로 다른 타이어를 교차로 장착하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노면과 기상 조건에서 장거리를 달리는 WRC는 서킷 레이스와는 차별화된, 아주 독특한 타이어 사용 전략이 필요하다.

운전도 하고, 타이어도 갈고

랠리 드라이버는 경기 도중 직접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정비도 도맡는다

F1 경기에서 타이어 교체는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절묘한 타이밍에 피트로 차를 불러들여 순식간에 타이어를 바꾸면, 앞서 달리던 차를 간발의 차이로 추월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많은 크루가 달라붙어 2~4초 만에 타이어를 교체하는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다.


하지만 WRC로 대표되는 랠리에서의 타이어 전략은 서킷 경기와 사뭇 다르다. 어떻게 보면 초창기 모터스포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서비스 파크를 제외한 장소에서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 팀 크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며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가 타이어 교체는 물론 응급 수리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랠리카에는 잭과 공구 키트, ‘만능 아이템’인 덕트 테이프 등이 실려 있다. 20세기 초 모터스포츠 선구자들이 정비사를 옆에 태우고 달렸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터진 타이어를 끌고 달리는 이유

만약 달리는 도중에 타이어 펑크를 감지했다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타이어 교체는 적어도 1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너덜거리는 타이어를 끌면서 그대로 달리는 편이 손해가 적을 수도 있다. 실제로 올해 크로아티아 랠리 최종 스테이지에서 현대월드랠리팀의 티에리 누빌은 타이어 2개가 터진 상황에서도 그대로 달려 3위 자리를 지켜냈다. 타이어가 림(휠)에서 빠지지 않고 공기가 천천히 빠지는 상황(slow puncture)이라면 오히려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타이어 펑크가 발생했을 땐 남은 스테이지와 노면의 특성 등을 감안해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포르투갈 랠리처럼 거친 스테이지라면 남은 거리가 짧더라도 타이어를 교체하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참고로 일반적인 타이어 교체 순서는 다음과 같다. 

상황에 따라 타이어를 교체하지 않고 주행하는 경우도 있다

1. 경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안전한 장소에 차를 세운다.

2. 잭과 렌치를 꺼낸다.

3. 코드라이버가 잭으로 차를 들어 올리면 드라이버가 휠 너트를 푼다.

4. 코드라이버가 스페어타이어를 꺼낸다.

5. 새 타이어를 장착하는 동안 코드라이버가 펑크 난 타이어를 트렁크에 넣고 고정한다.

6. 사용한 장비를 넣은 후 안전벨트를 매고 출발한다.

타이어가 억울해

올해는 더욱 강력해진 신형 랠리카 때문인지 경기 중 타이어 파손이 많았고, 드라이버들 역시 타이어 내구성에 불만을 드러냈다. 여기에 대해 공식 타이어 공급업체인 피렐리는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사실 피렐리의 주장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지난해까지 380마력 정도였던 월드랠리카의 출력이 랠리1으로 바뀌면서 무려 500마력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운포스도 한층 강력해졌기 때문에 타이어가 견뎌야 하는 스트레스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렐리는 트레드면이 과열되지 않도록 단단한 컴파운드를 사용하고, 패턴 디자인을 개량하는 한편 내부 구조도 보강했다. 하지만 아무리 튼튼한 타이어라고 해도 챔피언십 경쟁자들의 불타는 투쟁심을 견뎌 내기는 힘든 모양이다.

스페어타이어의 딜레마

랠리카에 싣는 스페어타이어의 개수를 결정하는 것도 전략의 일부다

랠리에서 타이어 펑크를 완전히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스페어타이어는 보통 1개만 싣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2개도 가능하다. 물론 무게 증가로 인한 기록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스페어타이어의 무게는 하나당 약 20kg이다. 하지만 타이어가 없어 경기를 포기하는 경우는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뿐인 스페어타이어를 사용한 후 서비스 직전 스테이지에서 다시 펑크가 난다면? 무사히 스테이지를 완주했다 하더라도 리타이어 확정이다. 서비스 파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연결 구간(일반 도로)을 달려야 하는데, 연결 구간에서는 손상되지 않은 네 바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련 규정이 강화되기 전에는 휠이나 차체를 긁으며 도로에서 달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타이어 전략이 승부를 가른다

코스의 노면 특성과 기후에 따라 타이어 선택은 천차만별로 변한다

현재 WRC의 공식 타이어 공급자는 피렐리다. 랠리용 타이어는 보통 노면 종류(타막, 그레이블)에 따라 부드럽거나 단단한 두 가지 종류의 컴파운드가 준비되며, 비 예보가 있을 때는 웨트 버전이 추가된다. 개막전 몬테카를로와 스웨덴은 조금 다르다. 풀 스노 랠리인 스웨덴에서는 타이어 둘레에 텅스텐 팁이 박힌 스터드 타이어를 사용한다. 반면 몬테카를로는 기본적으로는 포장도로(타막)지만 군데군데 눈과 얼음이 있고, 일부는 햇빛에 녹아 젖어 있는 등 노면 컨디션이 매우 다채롭다. 그래서 타막용 수퍼소프트와 소프트 외에 스노 타이어 두 가지(스터드/스터드리스)를 더해 총 네 종류의 타이어가 준비된다.

WRC에서는 타이어 사용에 엄격한 제한이 있어 신중한 타이어 선택이 필요하다

랠리카는 서비스 파크를 떠날 때 장착한 타이어와 스페어타이어를 다음 서비스 때까지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날씨나 노면 상태가 변화무쌍할 때는 타이어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각 팀의 세이프티 크루(아이스 노트 크루 혹은 그레이블 크루라고도 부른다)가 경기 직전에 스테이지를 달리며 노면 상태와 기상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일기예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타이어 전략을 결정한다. 물론 같은 팀이라고 해도 드라이버에 따라 타이어 선택은 달라진다. 


경쟁자의 타이어 전략을 파악하는 것도 요소다. 개막전 몬테카를로 랠리 생 데니즈 스테이지에서 선두 세바스티앙 오지에를 5.4초 차로 추격 중이던 세바스티앙 로브는 드라이 타이어를 골랐다. 얼음과 눈으로 덮인 부분이 많았음에도 마른 구간 속도로 승부를 걸겠다는 의도였다. 여기에 대해 오지에는 같은 타이어로 응수했다. 다소 도박적으로 보였지만 만에 하나 그 선택이 맞았을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 3등 이하가 멀리 떨어져 있기에 가능한 시도이기도 했다. 결국 오지에는 상대의 타이어 전략에 공격적으로 대응한 결과 토요일을 선두로 마감할 수 있었다.

다른 타이어를 섞어서 쓴다고?

변수가 많은 특성 탓에 랠리에선 종류가 다른 타이어를 조합하기도 한다

랠리에선 서로 다른 종류의 타이어를 섞어 쓰기도 한다. 일반 자동차는 물론 서킷 경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다. 지난 크로아티아 랠리 마지막 날 현대팀의 오트 타낙은 타막용 소프트와 레인 타이어를 앞뒤 대각선 위치에 장착했다. 이런 세팅은 좌우 코너링 느낌이 다르고, 제동할 때의 거동 역시 불안정해진다. 하지만 덕분에 얻는 것도 있다. 날씨나 노면이 변화무쌍해도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다. 덕분에 타낙은 폭우가 내린 SS19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종합 선두인 로반페라를 제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날씨가 빠르게 개자 도박적인 전략의 이점은 사라지고 말았다. 

앞뒤에 다른 타이어를 장착하는 경우도 있는데, 극단적인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 성향을 띠게 될 가능성이 커서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만 다른 타이어를 끼우기도 한다. 가령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부드러운 컴파운드의 스페어타이어가 남았다면 뒷바퀴 한쪽에라도 끼우고 남은 그립을 최대한 활용하는 식이다. 서킷 경기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이런 변칙적인 타이어 사용방식은 랠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대팀 역시 이런 상황을 대비해 다양한 타이어 조합의 테스트 데이터를 마련해 두고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명민한 타이어 전략 수립은 순위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올 시즌 현대팀이 보여준 크로아티아 랠리에서의 숨 막히는 추격전 속에는 날카로운 타이어 전략이 숨어 있었다

올해 3전 크로아티아 랠리에서 현대팀의 타낙이 보여준 막판 추격전 역시 치밀한 타이어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금요일을 마치는 시점에서 타낙은 로반페라에 1분 23초나 뒤처져 있었지만 토요일을 마쳤을 때의 시차는 19.9초, 일요일 SS19에서는 1.4초 차 역전까지 갔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로반페라는 현대팀에 비해 날씨 예측과 타이어 전략이 부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WRC 타막 랠리 역사상 가장 근접한 시차의 우승 경쟁을 보여줬던 이번 크로아티아 랠리는 WRC에서 타이어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방증한다. 이처럼 WRC는 좋은 차와 좋은 드라이버만 있다고 우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팀이 2번의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것 역시 팀원 모두가 이런 수많은 변수와 싸우고, 극복하여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팀, 이탈리아 랠리에서 영리한 타이어 전략으로 경쟁자를 압도하다

오트 타낙은 하드와 소프트 타이어를 함께 쓰는 전략을 세워 이탈리아 랠리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지난 6월 초, 현대팀은 사르데냐섬에서 열린 WRC 제5전 이탈리아 랠리에서 타낙 우승, 소르도 3위라는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르데냐는 건조하고 기온이 높아 하드 컴파운드의 그레이블 타이어를 기본으로 소프트를 추가하여 타이어 선택권이 비교적 단순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타이어의 전략적 선택은 중요하다. 가령 토요일 오전에 하드와 소프트 타이어를 섞어 장착한 타낙은 이날에만 6개 스테이지 톱 타임을 기록하며 2위 브린과의 시차를 46초로 벌렸다. 반면 일요일에는 하드 타이어로 무리한 주행을 피해 펑크 같은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파워 스테이지 포인트는 포기했지만, 이 역시 확실하게 우승컵을 손에 넣기 위한 전략이었다.

수많은 변수와 다양한 상황이 뒤섞인 랠리 경기에서 타이어 전략은 때때로 경기의 향방을 가르기도 한다

타이어의 수명을 어디서 어떻게 사용할지 또한 중요하다. 토요일 사고로 리타이어했던 누빌은 파워 스테이지 포인트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파워 스테이지 SS21은 SS19와 동일한 코스에서 열렸다. SS19에서 페이스를 끌어올려 예행연습을 하는 대신 나머지 스테이지에서는 힘을 빼 타이어를 아끼는 전략을 사용했다. 결국 누빌은 최종 스테이지인 SS21에서 톱 타임을 기록하며 귀중한 5점을 챙김과 동시에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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