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축가가 설계한 작은 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공간의 크기 자체는 아주 넉넉하지 않았어요. 혼자 살기에 적당한, 원룸에 가까운 공간이었어요. 하지만 사진에서는 두 사람이 행복하고 넉넉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벽에 찬장처럼 서있던 구조물을 아래로 내리면 침대가 되고, 천장고가 낮지 않아서 복층처럼 활용할 수 있는 구조였죠. 세심하게 고른 자재의 질감과 컬러들이 아주 조화롭게 어울린 공간이었습니다. 누구나 넓은 공간만을 선호하는 도시에서, 작은 공간으로도 새롭고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담겨있었습니다.
자동차도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차를 선호하죠. 큰 차를 사는 것이 풍요의 상징이자 사회적 성공, 모자랄 것 없는 일상의 약속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자동차들의 절대적인 크기도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점 커졌습니다. 시장이 조금이라도 넓은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공간은 여유 있는 일상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서도 어마어마한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건축가의 원룸처럼, 현대자동차의 캐스퍼처럼요.
캐스퍼는 엔트리 SUV이자 경형 모델입니다. 경형 모델은 규격이 제한돼 있죠. 여기서 수많은 선입견들이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좁지 않아? 통통거리지 않아? 힘은 충분해? 짐은 많이 실을 수 있어? 친구네 커플이랑 여행 가고 싶을 때는 어떡하지? 렌트를 해야할까? 스키장은? 낚시는? ‘차박’도 하고 싶은데…?
캐스퍼에 대한 관심은 거의 본능적이었습니다. 캐스퍼를 타고 골목을 지날 땐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예쁘다!”라고 감탄하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어요. 성별을 가리지도 않았습니다. 한강에서 만났던 어떤 남자분은 “저거 순정 컬러예요? 우와, 진짜 너무 예쁘다.”라며 한참을 차 주변에서 구경하다 헤어졌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나온 건물 앞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신사분께서 물어오셨어요. “캐스퍼 맞죠? 너무 예뻐서 딸한테 사주려고 하는데, 이 차 좋아요?”
이와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겁니다. 자, 시원하게 대답부터 해드릴게요. 좁지 않습니다. 저도 놀랐어요. 통통거리지 않고요, 차분하면서도 경쾌해요. 언덕 당연히 문제없고요. 가벼운 오프로드에서도 끄떡없을 거예요. 잊지 마세요. 캐스퍼는 SUV입니다. 캠핑 가실 수 있어요. 렌트 안 하셔도 돼요. 스키도, 낚시대도 실을 수 있습니다. ‘차박’도 가능해요.
딸한테 사주고 싶어하시던 신사분께는 차를 둘러보시라고, 잠깐의 시간을 권했습니다. 짧은 구경을 마친 신사분께서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습니다.
“이야, 이거 딸이 아니라 제가 갖고 싶어지는데요?”
캐스퍼는 뛰어난 건축가의 작은 집 같은 자동차입니다. 정말 미묘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넓은 공간을 향유할 수 있어요. 운전석에서는 어떤 답답함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야에도, 거동에도 여유가 있죠. 조수석에 누군가를 태우고 동행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어깨와 어깨 사이? 더 큰 차에 비해 물리적으로는 가까울 수밖에 없겠죠. 뭐, 줄자로 재보면 그럴 겁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유를 해칠 정도는 아니에요. 뒷좌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캐스퍼의 모든 탑승자는 서로의 개인 공간을 침해하지 않아요. 캐스퍼에 ‘좁다’는 형용사가 앉을 자리는 없습니다. 성인 네 명이 여유 있게 이동할 수 있는 자리만 충분하죠.
루프랙이 있는 캐스퍼를 선택하셨다면 루프톱 박스를 추가로 설치할 수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루프톱 박스는 75kg까지 추가 적재가 가능해요. 본격적인 캠핑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고려해 볼 만한 선택입니다. 뒷좌석과 조수석을 완전히 접을 수 있고, 2열 시트를 최대 160mm까지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데다, 등받이를 최대 39도까지 뒤로 젖힐 수 있는 공간으로도 모자람이 있다면 말이죠.
16cm라고 하면 얼마 안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안 들어갈 것 같은 크기의 아이스박스나 캐리어가 쏙 들어가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이 16cm를 조율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됩니다. 차체 자체의 크기가 16cm 넓지 않더라도, 이 소중한 16cm를 내 마음과 쓰임에 맞게 설정할 수 있는 거예요. 이처럼 공간 활용에서 진짜 중요한 건 개인화와 자유입니다. 내가 원하는 순간, 원하는 목적과 의지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공간이 진짜 스마트한 공간이죠.
조수석 풀폴딩 기능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해보기 전에는 그다지 필요 없는 기능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아니 사람 앉으라고 만든 의자를 왜 접어? 나는 필요 없어.’ 괜히 이런 심술을 부리고 싶어질 수도 있죠. 조수석은 의자 형상을 하고 있는 게 익숙하니까요. 그리고 혼자 탈 때는 조수석에 짐을 놓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캐스퍼는 조금 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저도 사실 접을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요, 일단 조수석을 접고 단 1시간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나니 이 의자를 다시 펼 생각이 깨끗하게 사라졌어요. 이렇게 편리할 줄, 캐스퍼에서 이 정도의 라운지 체험이 가능할 줄 몰랐던 거죠.
일정이 만만치 않은 날이었습니다. 마감과 미팅이 줄줄이 이어진 날이었죠. 그래도 점심 식사만은 여유 있게 하고 싶은 마음 아시죠? 간단한 식사를 테이크아웃 해서 한강 둔치를 찾았습니다. 조수석을 접었어요. 뒷좌석에 앉아, 접어둔 조수석 위에 트레이를 올려 두었습니다. 커피와 점심 식사를 트레이에 놓고 휴대전화도 트레이 위에 세워 뒀어요. 책도 한 권 올려 두었습니다. 뒷좌석은 뒤쪽으로 최대한 밀었습니다. 등받이도 살짝 뒤로 기울이고요.
‘아…’ 저도 모르게 아주 작은 감탄사가 나왔어요. 말줄임표 뒤에는 여러 가지 말들이 생략돼 있었습니다. ‘편하다’, ‘넓다’, ‘좋다’ 같은 말들.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분명히 대화로 나눴을 거예요. 하지만 그날은 혼자였으니까, 말줄임표로 생략하고 그저 순간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창문을 활짝 열었어요. 가방에서 랩톱(노트북)을 꺼냈습니다. 조수석 등에 올려놓고는 몇 가지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의 캐스퍼는 일종의 사무실이었던 거죠. ‘리모트 워크’, ‘리모트 오피스’를 캐스퍼와 함께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마친 후에는 랩톱을 접어 내려놓고 다리를 쭉 뻗었습니다. 상상이 되세요? 저는 뒷좌석에 그대로 앉아있고, 접혀 있는 조수석 등에 다리를 얹어 두었어요. 이 자세가 굉장히 편했는데, 캐스퍼의 조수석은 애초에 이런 자세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 같았습니다. 발뒤꿈치에서 아킬레스건을 지나 종아리로 이어지는 그 오목하고 부드러운 라인을 정확하게 지지하는 느낌. 캐스퍼의 자유로운 인테리어 레이아웃이, 뒷좌석과 조수석을 활용해 하나의 라운지 체어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좋아진 기분 그대로 뒷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햇빛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한 가을 오후. 한강에서 즐긴 망중한이었어요.
이제 자동차의 개념은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섰습니다. ‘Living Space’, 즉 거주 공간이 되었죠. 코로나19 시대가 앞당긴 흐름이기도 하고, 시대의 요구이기도 했습니다. ‘차박’과 ‘차크닉’의 유행은 그런 마음의 반영인 셈이죠. 언제 어디를 가든, 어디서 멈추든, 바로 거기가 나의 공간인 거예요. 일하고 쉬고 거주하는 모든 순간. 자동차가 완벽한 생활의 조건이자 일부가 되는 거죠.
캐스퍼가 터보 엔진과 험로주행모드를 마련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커다란 엔진을 단 SUV나 정통 오프로더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캐스퍼와 함께 가고픈 곳을 한결 가볍고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게 돕는 거죠. 실제로 캐스퍼는 웬만한 임도는 흔들림 없이 경쾌하게 내달립니다. 알면 알수록 배려가 참 깊은 차라는 생각이 들죠.
이제 캐스퍼의 모든 시트를 접어볼까요? 뒷좌석과 조수석은 물론 운전석까지 완벽하게 접고 나면 그야말로 방 같은 ‘Living Space’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널찍하고 편평한 공간이 나타나는 거죠. 여기에 캐스퍼에 맞춤으로 설계된 에어매트를 펼치면 편안하게 누울 수 있습니다. 전용 에어매트를 좌우 대칭으로 설치하면 두 사람이 편안하게 누울 수도 있겠죠?
작은 차체는 이동의 자유를 약속합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갈 때나 주차 공간을 확보할 때도 어마어마한 편의를 제공하죠. 경형 모델에 제공되는 각종 혜택도 달콤합니다. 하지만 기존 ‘경차’의 이 모든 장점들은 실내공간을 희생한 대가이기도 했어요. 경형 모델을 선택했을 때의 피할 수 없는 양보였던 거죠.
캐스퍼가 제안하는 공간은 좀 다릅니다. 평일의 한강도 좋지만 주말의 캠핑도 좋지 않느냐고 부추기는 낙천성과 올겨울에는 꼭 스키장에 가자고 말하는 것 같은 활기, 그리고 서핑이나 스킨스쿠버, 프리 다이빙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떠냐고 묻는 것 같은 적극성 등이 느껴집니다. 캐스퍼와 함께하면 ‘차박’도 즐거울 거라는 확신이 드는 게 아마 캐스퍼의 이런 자세 때문일 겁니다.
공간은 여유이자 자유입니다. 휴식이자 고요이기도 하죠.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우리가 도시 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이나 잠깐 쉬고 싶을 때, 주말을 활용해 재충전을 하고 싶을 때 필요로 하는 것들 말입니다. 캐스퍼는 영리한 공간 활용으로 경형 모델의 한계를 뛰어넘고 SUV의 장점을 취하면서, 진짜 효율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양보하지 말라고, 그저 누리라고 말하죠. 기분 좋게 평일의 일상과 주말의 아웃도어 라이프를 만끽하라고 권합니다. 이게 바로 캐스퍼가 품고 있는 진짜 가치입니다. 여러분도 꼭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글. 정우성(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더파크 대표)
작가이자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다. 〈GQ〉와 〈에스콰이어〉에서 10년 이상 자동차 담당 기자로 일했고, 2018년에 자동차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리뷰 미디어 〈더파크〉를 창업했다.
사진. 조혜진
HMG 저널 운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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