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9일 저녁, 덴마크 코펜하겐 시청 앞에서 자동차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 내용은 2021 시즌 PURE ETCR(ElETCRic Touring Car Racing)이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PURE ETCR은 기존 TCR 경주차에서 엔진이 포함된 구동계를 걷어내고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탑재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덕분에 내연기관 경주차 특유의 소음과 배출가스가 발생하지 않는다. PURE ETCR이 포뮬러E 등과 함께 미래 친환경 레이스로 주목받는 이유다.
계획대로였다면 PURE ETCR은 이미 첫 번째 시즌을 마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변수로 작용했다. 전세계 모터스포츠 업계의 발목을 붙잡은 팬데믹으로 인해 PURE ETCR은 시작하지도 못한 채 모든 것이 정지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수많은 인원이 PURE ETCR을 시작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PURE ETCR Launch Copenhagen - Hyundai Motorsport 2020
코펜하겐 시청 앞에서 벨로스터 N ETCR 경주차로 새로운 레이스의 시작을 알린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여러 팀의 경주차를 제치고 현대차 벨로스터 N ETCR이 무대에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PURE ETCR의 발전을 현대차와 벨로스터 N ETCR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해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ETCR 참가를 선언한 이후, 새로운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그 결과, PURE ETCR에 참가하기로 예정된 여러 팀 중 가장 먼저 완성된 경주차를 공개하며 2021 시즌 참가를 공식 선언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물이 있기까지, 지난 1년여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현대차의 모습을 살펴봤다.
현대차는 지난 9월 중순 PURE ETCR 참가 팀 최초로 경주차의 시스템 통합 및 테스트를 진행했다. 경주차 개발 중에 이 같은 과정을 거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ETCR 경주차의 특징에 대해 알아야 한다. 기존 TCR은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가 공급하는 i30 N TCR, 벨로스터 N TCR 같은 경주차를 팀이 구입해 레이스에 참가한다. 때문에 경주차별로 제원과 성능이 다르고, 우수한 경주차를 구입할수록 좋은 성적을 낼 확률이 높다.
반면, ETCR 경주차는 전기차의 핵심 요소인 모터, 배터리, 충전 시스템, 통제 모듈 등을 WAE(Williams Advanced Engineering) 한 곳으로부터 공급받는다. 또한, 제조사는 경주차 제작을 전담하고 팀이 그 경주차를 구매해 경기에 참가하는 TCR과 달리, PURE ETCR은 현대차, 알파로메오, 쿠프라 등의 제조사가 직접 팀을 꾸려 경기를 치른다. 그 결과, 모든 팀의 ETCR 경주차는 평균출력 300kW(402마력) 및 최고출력 500kW(671마력)인 전기모터, 65kW(800V) 용량의 배터리, 1단 변속기와 조합된 뒷바퀴굴림 구동계를 사용한다. 다만, 그 외 부분인 섀시, 차체 등에서는 제조사 고유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현대팀이 벨로스터 N ETCR 경주차에 시스템 통합을 진행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제조사와 WAE가 별도로 개발한 섀시 및 차체, 전기차 시스템을 통합시켜 비로소 하나의 ETCR 경주차를 완성하는 과정에서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테스트는 PURE ETCR을 관장하는 WSC(World Sporting Consulting)의 감독 아래, 영국 WAE 본사와 그레이트 튜(Great Tew) 서킷에서 진행됐다. 통합 및 테스트는 기계적인 부분과 전기 부분으로 나눠 이뤄졌다.
기계적인 부분에서는 배터리의 섀시 내부 장착, 냉각 시스템 연결 및 순환, 핵심 요소(차량 통제 모듈, 충전 모듈, 고전압 케이블 및 절연체 냉각수)의 설치 및 네트워크 연결 등을 확인했다. 아울러 전기 부분에서는 전선 연결 및 테스트, 모듈의 소프트웨어 및 펌웨어 로딩, 모든 센서 및 스위치 기능 확인, DCDC 컨버터의 기능 점검, 인버터 작동, 구동장치 작동, 배터리 충전 상태 등을 아울렀다.
벨로스터 N ETCR은 모든 통합 과정을 순조롭게 마쳤다. 예상했던 대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레이트 튜 서킷을 한계 속도로 300km 이상 달리며 성능 및 안전과 관련된 부분을 점검했다. 서킷에서 WAE와 WSC 관계자들은 벨로스터 N ETCR의 스로틀 페달 조작, 배터리를 9→98% 급속 충전할 때의 상태, 트랙션 컨트롤을 끈 상태에서의 최고속도 주행, 타이어 테스트 등을 진행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벨로스터 N ETCR은 합격점을 받았다.
WAE의 선임 프로그램 매니저인 알렉 패터슨(Alec Patterson)은 "엔지니어들이 디지털 환경과 연구실에서 사전에 완료한 모든 준비 작업을 벨로스터 N ETCR과의 물리적 테스트로 직접 검증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현대팀은 경주차의 시스템 통합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곧바로 실전과 같은 테스트를 진행했다. 지난 10월 19~20일, 이틀 동안 이탈리아 발레룽가(Vallelunga) 서킷에서 벨로스터 N ETCR의 테스트가 진행됐는데, 이 또한 ETCR 최초의 공식 서킷 테스트였다.
벨로스터 N ETCR과 함께 발레룽가 서킷을 달린 테스트 드라이버는 지난 수 년 동안 i30 N TCR로 WTCR에 참가한 아우구스토 파푸스(Augusto Farfus)였다. 그는 벨로스터 N ETCR로 서킷을 이틀 동안 셀 수 없이 달리며 동력 제어, 트랙션 컨트롤, 배터리 성능 및 충전 등을 포함해 경주차의 시스템 제어 소프트웨어와 최적화를 확인했다. 테스트 결과는 이번에도 완벽했다. 벨로스터 N ETCR은 아무 문제없이 발레룽가 서킷을 달렸고, 테스트에 참가한 모든 관계자들을 만족시켰다.
파푸스는 테스트를 마친 뒤, "WAE의 배터리와 모든 구성 요소를 장착한 최초의 ETCR 경주차인 벨로스터 N ETCR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가졌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발레룽가에서의 테스트를 통해 벨로스터 N ETCR의 매우 긍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이번 테스트를 통해 내연기관 엔진을 사용하는 TCR 경주차와 ETCR 경주차의 차이가 극명하게 확인됐다. ETCR 경주차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조적으로 TCR과 다르다. 앞엔진-앞바퀴굴림 방식인 TCR과 달리 ETCR은 전기모터와 배터리가 차체 한가운데 위치하며, 뒷바퀴를 굴린다. 따라서 섀시 및 차체 설계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지며, 제조사들은 이 안에서 전기 경주차의 최대 성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실제 벨로스터 N ETCR은 발레룽가 서킷의 저속 코너를 탈출할 때 강력한 가속력을 자랑하며 기존의 내연기관 경주차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2021년 정규 시즌 시작을 앞서 스페인 아라곤(Aragon) 서킷에서 ETCR과 TCR 경주차의 차이, 그리고 PURE ETCR만의 독특한 스타트 방식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이번에도 무대의 주인공은 벨로스터 N ETCR이었다. 그동안 PURE ETCR은 기존의 레이스와는 다른 진행 방식을 소개하며 많은 모터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스타트 방식이다. 기존에는 경주차들이 예선을 치른 뒤 기록이 좋은 순서대로 그리드(Grid)에 정렬한 뒤 출발 신호가 켜지면 출발한다. 반면, PURE ETCR은 경마장의 말이 출발하는 것처럼 전방이 막혀 있는 스타팅 게이트에 일렬로 선 뒤, 게이트가 열리는 동시에 출발한다.
이번 아라곤 이벤트에서 현대차의 벨로스터 N ETCR과 i30 N TCR은 PURE ETCR만의 독특한 스타트 방식으로 출발해 드래그 레이스를 펼쳤다. 벨로스터 N ETCR의 운전대는 노버트 미첼리즈(Norbert Michelisz)가 잡았고, 다른 두 대의 i30 N TCR 운전석에는 가브리엘 타퀴니(Gabriele Tarquini), 루카 앵슬러(Luca Engstler)가 앉았다. 이들 모두 지난 몇 시즌 동안 i30 N TCR을 타고 WTCR 및 지역 TCR 대회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보유한 현역 드라이버다. 이는 곧 드라이버들의 기량에는 큰 차이가 없고, ETCR과 TCR 경주차의 성능만으로 드래그 레이스의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윽고 스타팅 게이트가 열렸고, 세 대의 경주차가 출발했다. 요란한 배기음 대신 전기모터의 날카로운 고음과 함께 출발한 벨로스터 N ETCR은 i30 N TCR을 뒤로한 채 빠르게 치고 나가며 아라곤 서킷의 직선 주로를 내달렸다. 단순히 순간 가속력만 놓고 볼 때 ETCR 경주차는 내연기관 기반의 TCR 경주차보다 월등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벨로스터 N ETCR로 엄청난 가속력을 보여준 노버트 미첼리즈는 "PURE ETCR의 독특한 스타트 방식은 정말 멋지다. 제대로 된 경기가 시작되면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 벨로스터 N ETCR의 발진 가속 또한 놀랍다. 이 모습을 본다면 많은 모터스포츠 팬들이 PURE ETCR에 빠져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PURE ETCR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줬다.
현대차는 지난해 ETCR에 대한 참가 의사를 밝힌 뒤, 그 어떤 제조사나 팀보다도 적극적으로 새로운 전기차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다. 최초의 경주차 시스템 통합, 최초의 서킷 테스트, 최초의 이벤트 진행 등 지난 몇 개월 동안 보여준 일련의 과정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본다면, PURE ETCR의 발전을 현대차가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현대차가 새로운 방식의 전기차 레이스인 PURE ETCR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도록 하자.
HMG 저널 운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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