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램프는 앞길을 밝혀주는 자동차의 ‘눈’이자, 고객의 시선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는 디자인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동차 제조사의 기술력과 디자인 철학을 한 번에 엿볼 수 있는 부분인 셈이다.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헤드램프 디자인과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센슈어스 스포티니스’, 즉 감성적인 스포티함을 내세운 현대차가 최근 정립 중인 헤드램프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바로 ‘히든라이팅’이다. 쉽게 말해 빛의 일부만 투과하는 하프 미러(Half Mirror)의 원리를 헤드램프에 접목한 것으로, 점등 시에는 램프의 역할을 도맡다가 빛이 사라지면 가니시로 탈바꿈하는 세계 최초 기술이다. 콘셉트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디자인을 시행착오 끝에 양산차에 적용한 현대차 라이팅비전설계팀을 만나 히든라이팅 램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최근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헤드램프 디자인과 기술 개발에 많은 역량을 쏟고 있다. 어떤 이유로 이런 트렌드가 생겨난 건가?
심준보 책임연구원 ┃ 고객들 입장에서 볼 때, 긍정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성능이나 기술과는 달리 디자인은 출시 직전, 공개되는 이미지만으로도 판단이 가능하기에 첫인상 측면에서 가장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건 외장 램프라고 생각한다. 또한 외장 램프 제작에 디자인 자유도가 높은 LED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전보다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램프 성능이 상향평준화를 이루며 단순히 성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제네시스 브랜드를 통해 선보인 IFS(지능형 헤드램프 시스템)와 같은 신기술을 적용하거나, 히든라이팅 램프와 같은 디자인 특화 기술들을 적용해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Q. 쏘나타 히든라이팅 램프는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팰리세이드의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우주 연구원 ┃ 두 차량에 적용된 히든라이팅 기술은 원리와 공법은 동일하나, 적용 부위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말하자면, 쏘나타의 히든라이팅 램프는 주간주행등에 쓰여 법규 상 팰리세이드의 테일램프 히든라이팅보다 100배 이상 높은 밝기를 요구했다. 물론 두 모델 모두 보조 램프로써 기능하기 때문에 법규에 충족할 정도로 밝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메인 주간주행등과의 밝기를 맞춰야 했기에 어느 정도 높은 성능을 내야 했다. 또한 주변 부품과의 조화도 고려해야 했다. 소등 상태에서는 뒤쪽으로 연결되는 크롬 가니시와 동일한 이미지를 구현해야 했고, 점등 상태에서는 메인 주간주행등의 밝기와 일치해야 했다. 내부 구조가 전혀 다른 두 가지 부품들과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Q. 기술 특징 중 하나인 그라데이션 효과는 어떻게 구현했나?
정우주 연구원 ┃ 램프가 점등했을 때의 느낌은 실제 제작한 제품이 아니면 체험하기 어렵다. 그래서 수많은 시제품 제작을 필요로 한다. 이번 그라데이션 표현의 경우에는 밝기가 변화하는 시점이나 밝기 변화의 정도를 결정하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디자인 부서에서는 패턴의 도안을 바꾸고, 우리는 그 도안의 설계적인 문제점들을 검토했다. 협력사에서는 이에 맞춰 샘플을 제작해 함께 평가하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쏘나타만의 독창적인 그라데이션 효과를 만들 수 있었다.
Q. 방향지시등 역할이 더해진 더 뉴 그랜저 히든라이팅 램프에는 어떤 특징이 있었나?
이순일 연구원 ┃ 본 기술이 최초로 쓰인 팰리세이드와 쏘나타의 히든라이팅 램프는 기능적 요소보다는 장식 요소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다시 말해 법의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인데, 더 뉴 그랜저의 히든라이팅 램프는 방향지시등과 주간주행등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행 안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도맡는다. 따라서 히든라이팅 콘셉트를 구현하는 원리나 공법은 동일하나, 배광 기준은 물론, 색도와 같은 세부적인 법규 규정들을 만족해야 했다. 그러면서 라디에이터 그릴과의 일체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표면 처리와 레이저컷팅 공법의 정확도 향상 등 다양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Q. 더 뉴 그랜저와 같이 최근에는 램프 렌즈 표면에 패턴을 새기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배광 성능이 하락하거나 난반사가 일어나는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이순일 연구원 ┃ 아우터 렌즈(외측 렌즈)에 굴곡 형상이 더해지면 빛의 반사나 굴절 현상으로 원치 않던 빛의 왜곡이 발생한다. 설계 시 이와 같은 부분들은 피해서 점등 영역을 설정한다. 최근에는 아우터렌즈가 입체화되어 가는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빛이 분산되는 영역을 분석하고 최적화하는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해석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한 부분은 직접 시제품을 제작하고 테스트를 거쳐 램프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반면, 이너 렌즈(내측 렌즈)에는 점등 시 화려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패턴을 적용하고 있다. 최신 출시 차종들은 테일램프가 보석처럼 빛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빛의 난반사 효과를 의도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Q. 국가, 대륙별로 배광 기준이 상이해 히든라이팅 구성도 수출 및 내수용 제품에 따라 편차가 있지 않나?
심준보 책임연구원 ┃ 주간주행등만 봐도 북미와 유럽의 법규 배광 기준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 년 전부터 유럽과 동일한 기준을 세우고 있어 램프 개발 시에도 북미와 국내 및 유럽으로 이원화하여 개발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북미 시장이 요구하는 밝기 기준이 더 높은 편이다. 주간주행등 기준으로 보면 북미 기준이 20% 정도 밝은데, 이에 따라 북미 시장용 제품에 장착되는 주간주행등은 LED 전류를 상향해 더 밝게 제작하고 있다.
Q, 4세대 투싼은 파격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만큼, 디자인팀과의 협업이 중요했을 것 같다
심준보 책임연구원 ┃ 4세대 투싼은 램프 디자인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다. 주간주행등 렌즈의 표면에는 굴곡이 있고, 면적도 크게 늘었다. 여기에 히든라이팅 기술을 적용해 기존의 설비로 생산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다행히 디자인 부서 담당자들과 이전 프로젝트에서 협업을 진행하며 친분을 쌓은 덕분에 의사 결정이 한층 수월했다. 예컨대 큰 틀에서의 디자인 컨셉과 테마는 디자인 부서의 의견을 존중했으며, 세부적인 항목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되도록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가며 협업을 진행했다.
Q. 열팽창 수치가 가장 높은 알루미늄 대신 투싼 램프의 증착 소재를 니켈-크롬으로 선정한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심준보 책임연구원 ┃ 물론 알루미늄이 소재 특성상 내열 성능이 가장 높긴 하나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가장 유사한 컬러를 구현하는 부분이었다. 알루미늄은 파라메트릭 쥬얼 그릴 특유의 오묘한 색감을 구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적당한 색을 낼 수 있는 소재가 필요했다. 또한 내부의 내구 성능을 평가하는 조건이 가혹해서 적정 수준 이상의 내열 성능도 갖춰야 했다. 후보로 꼽은 소재 중 이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는 것이 바로 니켈-크롬이었다.
Q. 렌즈 내부에 특정 소재를 입히면 자연스레 발광 성능이나 시인성이 떨어질 법 하다. 상용화를 위해 어떤 기술을 적용했나?
심준보 책임연구원 ┃ 투명한 렌즈에 특수한 소재를 코팅하는 만큼 투과율은 하락하고 램프의 효율도 떨어지게 된다. 이 상태에서 법규 배광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LED 개수를 더하고, 전력 공급량도 늘렸다. 그런데 전력을 높이게 되면 LED가 과열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OHP(Over-Heat Protection)라는 기술도 적용했다. 온도 센서가 LED 주변의 온도를 측정해 기준치를 초과하면 공급 전류를 낮춰 온도를 떨어뜨리는 기술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기능이다. 말하자면, 여름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미국의 데스밸리와 같이 극한의 주행 환경까지 고려한 것이다.
Q. 소비 전력 증가와 같이 단순히 수치 상으론 효율적인 기술이라고 보긴 어려운 것 같다
심준보 책임연구원 ┃ 투과율 하락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LED 수량 증대와 소비 전력 증가가 이뤄지긴 했지만 배터리 성능이나 수명에 영향을 주는 수준은 아니다. 주간주행등은 말 그대로 주간에만 상시 점등하는 램프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소비 전력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단순히 시인성이나 법규만을 만족하는 효율적인 램프 개발이 주 목적이었다면 커다란 원형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을 거다. 대다수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앞다퉈 램프 디자인 다각화를 통한 아이덴티티 형성과 기술적 진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히든라이팅 램프는 효율적인 기술이라고도 볼 수 있다.
Q. 히든라이팅 기술이 적용된 렌즈의 투과율이나 배광 효율을 높이는 등 신기술 개발 방안을 구상 중인가?
이순일 연구원 ┃ 렌즈의 투과율이라는 건 작동 조건이나 각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기술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예컨대 투과율이 0%인 증착면을 통해서도 광원 위치의 변경에 따라 히든라이팅 구현이 가능할 수도 있고, 단순히 소재 증착이 아닌 차체 색상으로의 구현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내부에서 아이디어는 매우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으며, 이를 실제 구현할 수 있는 기술 개발 계획도 수립 중이다.
Q. 타사가 글래스 루프에 사용한 바 있는 전압식 명암 조절 기술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심준보 책임연구원 ┃ 말한 것처럼 전압에 의해 투과율을 조절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가 이뤄졌다. 그래서 이를 히든라이팅 기술에 활용하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특히 점등이 되었을 때는 투과율과 같은 램프 효율이 높아지고, 소등 상태에서는 확실한 히든라이팅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이를 구현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부수적인 장비들이 더해져야 하기에, 소비전력 증가나 비용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용 여부를 판단할 전망이다.
Q. 히든라이팅 원리를 자동차의 다른 요소에 차용한다면, 어떤 부품에 활용이 가능할까?
정우주 연구원 ┃ 히든라이팅의 기본 콘셉트와 원리는 사실 다른 부품에서도 쓰였다. 외장 램프의 경우 광량 조절이나 램프 디자인 자유도가 높은 LED가 보편적으로 상용화된 이후부터 기술 적용이 고려되었기에 상대적으로 적용 시기가 늦었다. 넓게 보면 태양광으로부터 운전자나 내장재를 보호하기 위해 틴티드 글래스를 적용한 것도 빛의 투과율을 활용한 것이다. 또한 사이드미러의 후측방 경보시스템(BSD) 경고 신호용 LED도 평소에는 미러의 거울 현상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기능이 작동하면 거울을 투과해 표기된다. 향후에는 실내의 다양한 조명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Q. 자율주행 자동차의 실현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히든라이팅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 예상하는가?
심준보 책임연구원 ┃ 완전한 자율주행 기능이 상용화되면 헤드램프는 시야 확보 장치로서의 의미는 많이 희석될 것이라 예상한다. 반면 이 시기에는 보행자를 포함해 주변에 전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 역할을 헤드램프를 비롯한 외장 램프가 수행하지 않을까 싶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의 램프가 자동차의 ‘눈’과 같은 존재였다면, 미래의 램프는 자동차의 표정이자 제스처가 될 전망이다. 이 같은 기능을 구현하는 데 있어 히든라이팅 기술도 자연스럽게 접목이 가능할 듯하다. 해당 기술과 관련해서는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기술 로드맵을 수립하고 차근차근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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