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주최한 아이오닉 5 시승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하필 도로 정체가 가장 심한 시간이었다. 주차장처럼 꽉 막힌 시내와 도시 고속도로, 그리고 외곽 도로를 달려야 했다. 하지만 피곤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의 ‘집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이오닉 5는 현대차의 첫 고유 모델인 포니를 오마주한 외관 디자인부터 편안한 느낌이다. 또렷한 직선이 많이 쓰이고 마치 ‘한 덩어리’처럼 옹골찬 디자인이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인상보다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먼저 다가오는 모습이다.
실내가 주는 느낌 역시 마찬가지다. 간결하게 처리한 면과 날카로운 모서리를 찾기 힘들 만큼 둥글린 디자인이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천연 바이오 성분 및 각종 재활용 원료를 활용한 친환경 소재를 적용했다는 설명에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하다.
막 출발하려던 찰나, 뒷좌석에 벗어놓은 외투 안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이 울렸다. 평소라면 손을 뻗어도 닿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서 문을 열고 내려야 했겠지만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전좌석 시트 메모리 기능 항목으로 들어간 뒤, 뒷좌석을 앞으로 당기는 동시에 운전석 등받이를 눕히며 뒤로 움직였다. 덕분에 내리지 않고 손쉽게 전화를 받은 후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움직인 시트는 모니터 화면으로 모든 시트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고, 여느 차처럼 운전석 도어의 메모리 시트 버튼으로 운전석만 되돌릴 수도 있다.
전좌석 시트 메모리 기능은 아이오닉 5가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진 부분이었다. ‘새로운 전기차’라는 측면에서 아이오닉 5를 선택하는 고객들도 많을 테지만, 어쩌면 넓고 바닥이 평평한 실내 공간에서 비롯된 새로운 쓸모와 즐거움, 즉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느껴본 뒤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로 넘어가는 고객들이 더 많아질 지도 모르겠다.
앞뒤로 14cm 이동하는 ‘유니버설 아일랜드(Universal Island)’도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뒷좌석 카 시트에서 울고 있는 아이나 뒷좌석에 던져둔 가방에 손이 닿지 않아 당황했던 사람이라면 전좌석 시트 메모리 기능에 감동할 것이다.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실용성까지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 이를 가능케 하는 평평한 바닥 형태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는 단순히 전용 전기차 이상의 특장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아이오닉 5를 시승하기 전에 우려했던 것은 승차감이었다. 전기차들은 커다란 배터리 때문에 무겁고, 그 무게를 지탱하려면 서스펜션에 강한 스프링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수많은 전기차 중 예외는 거의 없었다. 전자제어식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한 고가의 럭셔리 전기차들도 무게의 부담을 완벽히 해소하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고성능’ 또는 ‘역동적인 성격’을 강조하며 단단한 승차감을 합리화한 경우가 대다수다.
아이오닉 5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진입하며 요철을 만났을 때, 여느 전기차가 그렇듯 둔탁한 충격이 발생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아이오닉 5는 아주 매끈하게 통과했다. 불쑥 솟은 과속방지턱을 마주했을 때는 직전의 느낌이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단한 서스펜션을 가진 전기차들이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던 것처럼, 아이오닉 5 역시 큰 충격을 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아이오닉 5는 과속방지턱을 지그시 눌러 밟으며 요철의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오닉 5의 서스펜션이 무른 것은 절대 아니다. 시승차로 제공받은 아이오닉 5 롱레인지 후륜구동 프레스티지 트림의 공차중량은 1,950kg으로, 이는 비슷한 크기의 투싼보다도 300kg 이상 무거운 수치다. 과속방지턱을 내려올 때도 ‘쿵’ 하면서 떨어지거나 출렁임이 계속되는 움직임이 아니라, 짧은 반동으로 모든 과정을 세련되게 마무리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더 무거운 뒷부분을 받치는 뒷바퀴의 감각이 훌륭한 것으로 보아, 뒷좌석 승차감도 뛰어날 듯하다.
아이오닉 5의 부드러운 승차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세상에 무게를 숨기는 마술은 없지만, 충격을 잘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자동차 엔지니어링은 분명 존재한다. 가격 경쟁력과 대량생산을 위한 효율성을 무시할 수 없는 현대차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오닉 5의 주행 질감과 승차감을 훌륭하게 조합했다.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무거운 전기차를 처음 타는 이들이 편안한 승차감과 주행 안정성에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설정한 최우선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전기차를 처음 접하는 고객이라도 거부감이 전혀 없을 것이다.
고속도로와 노면이 거친 이면도로에선 아이오닉 5의 실내 소음을 확인했다. 엔진이 없는 전기차는 태생적으로 조용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소음에 대단히 민감하다. 가장 큰 소음원인 엔진이 없는 대신, 이전에 잘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면서 괜히 더 시끄러운 느낌이 드는 것이다. 타이어의 노면 소음, 풍절음, 실내 내장재에서 간혹 들리는 작은 잡소리, 심지어 에어컨 증발기에서 들리는 ‘쉭~쉭~’거리는 아주 작은 소리조차 귀에 거슬릴 때가 있을 정도다.
반면 아이오닉 5의 실내는 아주 조용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타이어 소음이 아주 작다는 점이다. 대형 SUV인 팰리세이드의 것보다 폭이 더 넓은 255/45R 20인치의 타이어는 거대한 소음원이다. 그런데 실내에서는 노면 소음이나 휠 하우스 안에서 생기는 와류의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시승 코스의 경유지 인근에 있는 비포장도로를 지날 때도 바닥의 소음이나 진동이 ‘1’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전기차의 고질적인 하부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를 30km/h 이상 초과하지 않는 한, 풍절음도 거슬리지 않는다. 앞뒤에 적용한 이중 접합 유리의 역할이 크다. 창문을 열어보면 소음이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지붕 전체에 고정 유리를 적용하고 전동 롤블라인드 기능을 추가한 비전루프의 방음 효과다. 시승 내내 하늘이 훤히 보이도록 가리개 없이 주행했는데, 터널 안에서도 머리 위쪽의 소음이 크게 들리는 느낌이 없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를 만큼 비전루프의 차음 효과는 훌륭했다. 아이오닉 5는 정말 매우 조용한 전기차다.
시승기 도입부에서 실내 공간, 승차감, 실내 소음에 대해서 집중한 이유는 명확하다. 아이오닉 5는 새로운 전기차라는 것을 넘어, 대중들에게 훌륭한 이동수단,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빌리티로 다가서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아이오닉 5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우등생으로 합격’이다.
이제 전기차로서의 영역을 점검하자. 아이오닉 5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적용한 초고속 충전일 것이다. 이 부분은 시승 코스에 포함된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은 최근 현대차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선보인 초고속 충전소 E-pit와 함께 전기차 초고속 충전 네트워크의 핵심이 될 장소다. 이곳에선 노약자와 임산부도 손쉽게 다룰 수 있을 만큼 편리한 하이차저도 경험할 수 있다. 하이차저는 충전 케이블을 힘들게 당길 필요 없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시승 행사 중이기 때문에 배터리의 70%까지만 충전하기로 하고, 내부의 카페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이오닉 5의 운전석 릴렉션 컴포트 시트를 경험할 기회였지만, 이곳에서 전기차를 충전하면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잘 꾸며놓은 카페 안에는 전기차를 충전하는 사람들 외에도 커피 한 잔의 여유, 지인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의 모습에서, 전기차가 일상으로 다가서는 훌륭한 교두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서 나오는 데 5분이 걸렸을까. 어느새 배터리의 70% 가까이 충전됐고, 350kW급 초고속 충전기를 통해 5분 동안 충전한 에너지의 양은 13kWh였다. 아이오닉 5 롱레인지 모델의 배터리 용량인 72.6kWh의 20%를 단 5분 만에 충전한 것이다. 시승차의 공인 복합 연비인 4.9km/kWh를 기준으로 하면, 5분 동안 64km를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충전한 셈이다. 이를 시간 단위로 계산하면 1시간에 156kW를 충전하는 것이다. 사실 350kW로 계속 충전할 수 있는 전기차는 없다. 순간적으로 정점을 찍고 충전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스펙만 고성능’인 전기차들이 많은데, 아이오닉 5는 배터리 잔량 50~70% 구간에서 평균 150kW 이상이라는 상당한 수준의 충전 속도를 보여준다.
사실 아이오닉 5가 실제로 350kW의 충전 속도를 보이는지, 그렇다면 배터리 충전 상태(State Of Charge, SOC)의 어느 구간에서 그 속도를 보이는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현대차의 설명으로는 배터리의 10~50% 구간에서 220kW 전후의 속도를 보인다고 한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최고 150kW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실질적인 충전 속도에서 타협하는 점이나 테슬라의 평균 충전 속도를 생각한다면 아이오닉 5의 충전 속도와 ‘충전 지구력’은 대단한 수준이다. 350kW 초고속 충전기를 이용하면 10%에서 80%까지 18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는 현대차의 이야기를 계산해보면 시간당 평균 169kW라는 뜻이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오닉 5의 전비(연비)는 어땠을까? 한낮 기온 27℃로 초여름 날씨 같았던 때 에어컨을 충분히 작동하면서 시내와 외곽 도로를 교통 흐름에 따라 운전한 결과는 6.9km/kWh였다. 연비 운전에 집중한 것도 아닌데 공인 연비보다 높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울러 시승회가 끝난 후에 확인된 시승 참가자의 평균 전비는 6.4km/kWh, 최고 전비는 8.6km/kWh였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일상에서 주행 가능 거리는 손쉽게 500km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승 후반에 와인딩 도로 주행과 급가속 주행이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수치다. 실제 운행에서 전비 걱정을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회차 지점에서 아이오닉 5의 적재 공간을 살펴봤다. 아이오닉 5의 트렁크 용량은 531ℓ로, 뒷좌석을 접으면 1,591ℓ까지 늘어난다. 트렁크 바닥 아래에 ‘ㄷ’ 형태로 널찍한 공간이 있어서 잡다한 물건을 담을 수 있고, 시승차에는 외부 V2L 어댑터가 포함된 충전 케이블이 들어 있었다. 차 곳곳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실용성까지 챙긴 것이다. 엔진이 있을 공간에 마련된 프렁크(앞 트렁크)의 경우 후륜구동 모델과 4륜구동 모델에 따라 차이가 있다. 4륜구동 모델의 프렁크는 계단 형태로 용량은 24ℓ, 후륜구동 모델은 네모반듯한 57ℓ의 프렁크 공간을 갖고 있다. 휴대용 충전 케이블을 넣고도 남을 공간이다.
외부 V2L 어댑터를 꺼내 충전구에 꽂은 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즉시 작동한다. 차의 전원을 켜지 않았는데도 작동한다는 점은 간편한 사용성과 알뜰한 효율성을 뜻한다. 야외에서 오랜 시간 레저 활동을 즐길 때 퍽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댑터를 빼려고 하는데 빠지지 않는다. 충전기 도난 방지 기능이 V2L 어댑터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었다. 리모트 키로 아이오닉 5의 잠금을 해제한 뒤에야 어댑터가 빠진다.
물론 아이오닉 5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운전 마니아들에게는 아이오닉 5의 주행 질감이 다소 부드러울 것이다. 공차중량이 1.9t에 달하는 전기차에 최고출력 160kW(217마력), 최대 350Nm의 토크는 그리 강력한 수치는 아니며, 편안한 승차감을 위한 부드러운 설정의 서스펜션 때문에 조종 성능도 다소 나긋하다. 하지만 접지력이나 주행 안정성 자체는 훌륭한 수준이다. 가볍게 돌아가는 느낌의 운전대도 일상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서 아이오닉 5가 마치 ‘집밥’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가끔 외식이나 별미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역시 집밥이 최고야!’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만큼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 좋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개념의 모빌리티가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는 신선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시선을 끌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려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아이오닉 5다. 그런 점에서 아이오닉 5는 첨단 기술을 강조하기보다는, 일반 고객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잘 전달한다. 아이오닉 5가 새로운 전기차 시대를 이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글. 나윤석
필자는 아우디 브랜드 매니저, 폭스바겐 코리아의 프로덕트 마케팅 팀장, 폭스바겐 본사 매니저, 페라리 총괄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프리랜서 자동차 칼럼니스트 및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자동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최대일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HMG 저널 운영팀
group@hyundai.comHMG 저널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L) 2.0 정책에 따라 콘텐츠의 복제와 배포, 전송, 전시 및 공연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단, 정보 사용자는 HMG 저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개인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HMG 운영정책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