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합니다. 지금은 인류의 유산이 된 궁전과 교회들이 신탁 시대였던 고대와 중세에 지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도 특유의 건축 양식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모더니즘 건축입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소재의 강성으로만 건물을 짓는 건축을 뛰어넘어 철근과 콘크리트, 철골로 끝을 모르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마천루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1972년, 건축의 주류였던 모더니즘은 마침표를 찍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모더니즘에서 발생한 의문들과 한계점에 대응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건축물은 합리성을 강조하는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류 모더니즘의 반듯한 직육면체 건축을 계승하기도, 부정하기도 했죠. 모더니즘을 계승하는 건축물은 직육면체의 형태 일부에 변화를 주는 형태가 됐고, 모더니즘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체주의 건축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진행형인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은 이렇게 다양한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중 오늘 다룰 주제는 비정형 건축입니다. 비정형 건축이란, 직육면체가 아닌 형이상학적 건축물을 말하는데요.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스페인 빌바오에 자리한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마카오의 ‘자하 하디드 모르페우스 호텔’ 등을 들 수 있죠.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부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도 비정형 건축에 포함됩니다. 국내에도 이러한 비정형 건축의 여러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따개비를 형상화한 여수 엑스포 주제관 ‘하나의 바다’,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 삼성동 ‘하나은행’ 등이 있습니다.
대체할 수 없는 건축의 거장 안토니 가우디는 “곡선은 신의 선이고 직선은 인간의 선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비정형 건축의 핵심은 바로 곡선 건축입니다. 가우디 이후 인간은 거듭하며 곡선을 수학적으로 예측해 신의 선을 설계하고 제조할 수 있게 발전한 것이죠. 그리고 신의 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드디어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정형화된 직육면체 빌딩은 철근 콘크리트를 기조로 사용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철근 콘크리트는 건설 현장에서 바로 철근을 배열하고, 콘크리트의 형태를 잡는 틀인 거푸집을 만든 뒤, 여기에 다시 콘크리트를 채워서 다지는 타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콘크리트 타설 후, 완전히 굳히는 양생 과정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형 건축물에 적합한 방식입니다. 하지만 거푸집 역시 직육면체의 평평한 형태를 조립해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비정형 건축도 한계가 있습니다. 비정형 건축물은 복잡한 곡면과 형태를 포함하고 있어 시공이 매우 까다롭고 난이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이 2년간의 연구 끝에 선보이는 스마트 건축 기술을 활용한다면, 작은 크기의 복잡한 비정형 구조물 건축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건축자재 전문 업체인 삼표와 로봇 솔루션 스타트업 BAT와 협업하여 초고강도 콘크리트(UHPC, Ultra High Performance Concrete)를 개발하고, 로봇과 3D 프린팅을 활용한 새로운 시공 기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기술과 자재, 건설 기술이 정교하게 균형을 맞춘 이번 개발을 통해 3D 프린팅으로 구조물의 형태를 따라 자유롭게 철근을 제작하는 일도 가능해졌죠. 로봇을 이용해 거푸집을 제작하는 등 건축의 거의 모든 과정에 최첨단 기술이 도입되었는데요. 정교한 작업은 물론, 공사 기한까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줄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기존에도 비정형 건축을 위한 거푸집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축물의 복잡한 구조와 형태에 맞춰 철근을 하나하나 가공해 사용하거나, 작업 중 콘크리트의 균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강섬유로 메워야 했죠. 이를 위해 강섬유를 위한 특수 거푸집을 별도로 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강섬유의 부식으로 인한 시공 품질 및 안전 저하도 쉽게 넘기기는 힘든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의 스마트 건축은 비정형 건축을 위해 거푸집 자체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합니다. 금속 3D 프린팅을 통해 구조물 형상에 따라 철근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기존에 있는 철근을 끊어서 조금씩 배치하는 게 아니라, 금속 3D 프린팅으로 철근을 쌓아 만들죠. 여기에 맞춰 정밀하게 계산된 설계도에 따라 6축 다관절 로봇이 EPS(Expanded Polystyrene) 스티로폼을 알맞게 잘라주면 거푸집 외형이 완성됩니다.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지만, 3D GUI(Graphic User Interface)가 있다면, 한 번에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PC 화면에서 3D 화면을 통해 건물의 전체 형태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가상공간에 실제 크기의 건물, 말하자면 디지털 쌍둥이를 만들어 파악하는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과 3D 스캐닝으로 보다 정밀한 측정도 가능해졌습니다.
현재 현대엔지니어링의 스마트 건축 기술은 실질적인 성과 검증도 완수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면이 곡선으로 이뤄진 폭 2.5m × 길이 5.0m × 높이 3.5m × 두께 50mm 크기의 비정형 ‘구조물 목업(Mock-Up)’을 시범적으로 제작한 것인데요. 시공 오차는 ±2.5mm 이내로 확인됐습니다. 여기서 소재의 강도와 특성 등만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일반적인 건축물의 크기로도 제작이 가능해집니다.
BIM, 금속 3D 프린팅, 로봇 및 3D 스캐닝 등 현대엔지니어링이 개발한 비정형 건축을 위한 스마트 기술들은 앞으로 실제 건설 현장에서도 확대 적용될 예정입니다. 비정형 건축이 일상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후속 기술은 물론 똑같아 보이는 아파트에 개성을 부여해 줄 비정형 건축 출입구(문주) 등 특화 상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획일화된 건물이 들어선 동네가 아니라, 다양한 개성의 비정형 건물로 채워진 지역들을 그려보아도 좋겠습니다.
과거의 건축물은 사람의 노동력과 신에 대한 믿음으로, 그 이후에는 모듈화 된 벽돌로, 근현대의 건축물은 정확하게 딱 맞는 철근과 콘크리트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건축물은 정밀한 수학적 계산과 형태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력, 그리고 특수 소재와 로봇 기술을 통해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때 ‘신의 선’으로 불렸던 비정형 곡선 건축은 이제 평범한 우리 모두가 꿈꿀 수 있는 현재이며, 미래입니다.
글. 이종철(바이라인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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