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서 선입견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가령 고급차에서는 중후한 디자인과 무채색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최근 이런 선입견이 조금씩 깨지고 있기는 하지만 자동차 컬러 분야에서는 여전히 파격적인 변화를 발견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제네시스 최초의 SUV인 GV80는 다르다. 선입견을 깰 만한 변화로 가득하다. 비단 신기술과 디자인뿐 만이 아니다. 컬러와 소재에서도 새로운 방향을 시도했다. 그 어떤 프리미엄 SUV에서도 느끼기 어려웠던 신선한 분위기다. 파격적인 컬러와 도장 기법, 다양한 소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GV80의 이런 새로운 시도는 어떻게 완성됐을까? 제네시스칼라팀의 허승완 연구원을 만나 GV80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GV80의 외장 컬러 이름에는 ‘리마’, ‘멜버른’ 등의 지명이 들어간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GV80의 외장 컬러는 ‘장소(Place)’가 가진 테마를 발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전 세계 특색 있는 도시들의 이미지를 콘셉트화 해 차에 어울리는 컬러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컬러를 완성하고 도시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다. GV80에 어울리는 도시 또는 장소를 조사한 뒤, 그곳을 대표하는 색이나 그곳에서 떠오르는 색을 기반으로 외장 컬러를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한 컬러가 바로 카디프 그린, 리마 레드, 골드코스트 실버, 멜버른 그레이, 마테호른 화이트 등이다. 각각 영국 웨일스, 페루, 호주, 스위스에 위치한 지명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이런 컬러 제작 방식은 앞으로 나올 새로운 제네시스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Q. GV80의 대표 외장 컬러는 무엇인가?
GV80의 외장 컬러는 무채색 계열부터 화려한 유채색까지 총 11개(국내 기준)가 있다. 그 중 GV80를 대표하는 컬러는 카디프 그린이다. 그 다음은 리마 레드로, 붉은색 모래 사막으로 유명한 페루의 도시 리마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컬러다. 카디프 그린이 GV80의 고급스러움을 표현한다면, 리마 레드는 스포티함을 드러낸다.
Q. 그린 컬러를 대표 컬러로 지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카디프 그린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프리미엄 SUV에선 흔치 않은 컬러로 GV80의 개성과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자동차는 지금까지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무채색을 많이 썼다. 그러나 GV80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브랜드 최초의 SUV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독특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카디프 그린 컬러는 2~3년 전에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형 세단 혹은 SUV에 그린 컬러를 쓰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향후 그린 컬러가 럭셔리를 대표할 수 있는 컬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GV80가 출시된 바로 지금, 자동차 산업뿐 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그린 컬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카디프 그린은 우리의 예상대로 프리미엄 SUV의 고급스러움과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컬러가 됐다.
Q. 기존 제네시스 모델의 이미지와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컬러에 많은 신경을 썼을 것 같다.
제네시스 최초의 SUV이기에 세단과는 차별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동시에 제네시스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를 위해 유색 컬러에는 입자감을 강조했다. 앞서 잠시 언급한 리마 레드가 좋은 예다. 입자감이란 도료에 미세한 금속 입자를 첨가해 빛이 반사되는 양을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방식은 색감의 깊이를 더하고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무채색 컬러는 부드러운 느낌을 최대한 강조해 제네시스만의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GV80에는 마테호른 화이트, 멜버른 그레이, 브런즈윅 그린 등 3가지 무광 컬러가 있다. 무광 컬러를 적용한 이유는 제네시스 최초의 SUV라는 특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프리미엄 SUV에 무광 컬러를 적용한 경우는 흔치 않다. 따라서 무광 컬러를 더한 GV80의 존재감이 한층 돋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Q. 무광 컬러는 제작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무광 컬러 양산을 위해서는 도장 설비부터 다시 설정해야 했다. 유광 컬러에 사용하는 클리어 코트(도장 위에 더하는 투명 페인트 재질의 마감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광 클리어 코트를 담는 탱크부터 새로 만들어야 했다. 무광 컬러에 맞는 배관 등 새로운 설비와 기술도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을 GV80의 컬러를 개발하기 시작한 2~3년 전부터 준비했다.
Q. 무광 컬러에 특별한 도장 기법이 필요한가?
무광 외장 컬러의 경우, 광택도 차이에 따른 색감의 차이가 확연하다. 자칫 무광 컬러가 차를 저렴해 보이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광 컬러를 잘 사용하면 고급스러움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최적의 무광 색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화이트, 그레이, 그린 컬러가 무광으로 잘 표현될 수 있도록 광택도를 1~2%씩 미세하게 조절해서 최적의 도장 품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Q. 차체 하단부와 그린 하우스(유리와 지붕을 포함한 차체 상단부) 등 외부에 적용된 크롬 면적이 꽤 넓은 편이다. 크롬 패널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이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품평 당시 크롬의 적용 범위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긴 했다. 그러나 브랜드 최초의 SUV로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에 이 정도 면적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적지도, 과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GV80의 모든 크롬 패널은 도장이 아닌 실제 크롬 도금이다. 도장으로도 크롬의 느낌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고급스러움이 떨어진다.
Q. 유광 컬러에는 유광 크롬이, 무광 컬러에는 무광 크롬이 적용됐다.
유광 컬러에 유광 크롬을 조합하면 GV80의 고급스러움이 부각된다. 그러나 무광 컬러에 유광 크롬을 더하면 어색해 보일 수 있다. 유광 크롬이 고급스러움과 존재감을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긴 하지만 무광 컬러에서는 너무 튀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무광 컬러와 무광 크롬의 조합은 GV80의 개성과 스포티함을 한층 도드라지게 한다. 참고로 프론트 그릴의 경우 유, 무광 컬러에 관계 없이 유광으로 처리했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담겨 있는 곳이기 때문에, 컬러에 관계없이 디자인을 강조하고 싶었다.
Q. 실내 컬러 디자인에 있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염두에 뒀는지 궁금하다.
실내의 경우, 다양한 컬러 조합으로 운전자 및 동승객이 신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컬러가 블랙/블랙, 블랙/바닐라 베이지, 어반 브라운/바닐라 베이지, 울트라마린 블루/듄 베이지, 마룬 브라운/스모키 그린 등의 5가지 조합이다. 이 모든 실내 컬러 조합은 기본적으로 프리미엄과 럭셔리 이미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SUV에 걸맞는 스포티함과 역동성까지 담고 있다.
컬러 조합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어반 브라운/바닐라 베이지 조합은 전통적인 브라운 컬러보다 좀 더 모던하고 고급스럽다. 울트라마린 블루/듄 베이지는 GV80 실내의 신선함을 가장 극대화하는 조합이다. 고급스러움과 스포티함이 공존해 더욱 특별하다. 마지막으로 마룬 브라운/스모키 그린 조합은 5가지 실내 컬러 조합 중 가장 고급스럽다. 품평 당시 많은 사람이 GV80의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하는 컬러라고 평가했다.
Q. 최근 프리미엄 SUV들의 실내를 보면, 컬러와 소재를 이용해 고급스러움과 스포티함을 고르게 표현하고 있다. GV80는 어떤 쪽에 좀 더 초점을 맞췄나?
제네시스는 프리미엄과 럭셔리를 지향하는 브랜드다. 그러나 GV80는 SUV이기 때문에 그 특성에 걸맞는 스포티함과 역동성까지 표현해야 한다. 이게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였다. 그래서 GV80의 실내에는 전통적으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밝은 베이지 컬러의 비중을 높였다. 동시에 울트라마린 블루 같은 새로운 유색 컬러의 조합으로 스포티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소재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리얼 우드를 통해 고급스러움을 표현하면서 알루미늄 소재와 메탈 느낌의 컬러를 더해 스포티한 감성을 부각했다. 특히 알루미늄 소재에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상징하는 지-매트릭스 패턴을 2중으로 적용해 스포티함과 고급스러움의 공존을 꾀했다.
Q. 프리미엄 모델은 실내 감성 품질이 매우 중요하다. 감성 품질을 극대화하기 위한 GV80만의 컬러와 소재는 어떤 것들이 있나?
감성 품질은 실내의 세부적인 곳까지 세심하게 다듬는 것에서 시작한다. 크래시 패드와 시트에 적용된 스티치의 간격, 실내 전체와 세부 소재 간의 컬러 조화 등 작은 것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GV80의 센터콘솔과 도어 안쪽에 적용된 리얼 우드가 대표적이다. 리얼 우드의 경우 나뭇결의 촉감을 최대한 살려 감성 품질이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블랙 애쉬, 버치, 올리브 애쉬, 메탈릭 포어필러 애쉬 등 4종의 리얼 우드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럭셔리를 표현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할 수 있다.
Q. 적합한 소재를 찾기 위해 리얼 우드를 만드는 여러 국가를 돌아다녔다고 들었다.
GV80의 실내 컬러를 개발하면서, 색감과 잘 어울리는 리얼 우드를 찾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 등 리얼 우드 베니어(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얇은 나무판)를 공급하는 산지를 직접 방문해야만 했다. 현지에 가서 완성된 컬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우드의 패턴, 촉감, 색까지 수백 종의 우드를 일일이 대조하고 확인한 뒤 총 4가지 리얼 우드를 선택했다.
그렇게 선택한 우드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새로운 공법도 개발해 적용했다. 바로 ‘포어필러’ 공법이다. 리얼 우드 소재의 결 사이에 특별한 금속 소재를 첨가해 질감을 부각시켜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적용해 만든 우드 장식이 바로 ‘메탈릭 포어필러 애쉬’다.
Q. GV80의 실내는 금속 소재보다 리얼 우드의 비중이 좀 더 큰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GV80의 실내 장식에는 알루미늄과 리얼 우드 옵션이 제공된다. 다만 알루미늄은 한 가지로 제공되는 데 반해, 리얼 우드는 총 네 가지로 제공된다. 리얼 우드를 쓰면 공간의 풍부함과 감성적인 색감이 잘 표현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동차 실내가 하나의 연결된 공간으로 느껴진다. 실내 컬러와 조화를 이루는 리얼 우드를 선택하면, 차가 아닌 멋진 거실에 앉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GV80의 탑승객들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리얼 우드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Q. 최근 프리미엄 자동차의 실내를 보면, 기존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GV80에서도 이런 시도를 찾을 수 있나?
다이얼 타입 SBW에 적용된 리얼 글라스가 있다. 이 부분을 위에서 내려다 보면 투명한 리얼 글라스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플라스틱 대신 리얼 글라스를 적용한 이유는 프리미엄 브랜드에 걸맞는 감성 품질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들여다봤을 때 깊이감이 다르고, 빛이 들어왔을 때 반사되는 형태도 훨씬 더 고급스럽다.
Q. GV80의 외장과 내장 컬러, 소재 등이 여러 종류로 나뉘고, 조합 가능한 수도 많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추천하는 조합은 무엇인가?
외장 컬러는 카디프 그린, 내장 컬러는 마룬 브라운/스모키 그린, 우드는 올리브 애쉬 조합을 가장 좋아한다. 긴 시간에 걸쳐 개발했기에 애착이 가는 컬러들이다. 앞서 말했듯, 그린은 프리미엄 SUV의 내, 외장 컬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컬러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색감을 미세하게 조절하느라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 멋진 컬러가 나왔기에 자신 있게 추천한다. 이 조합으로 GV80를 꾸민다면, 제네시스 SUV만의 개성과 고급스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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